


개화기에 유일한 사학적 법학교육기관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는 한 세기의 역사를 지닌 고려대학교와 그 길을 같이 하여왔다. 법학과의 모태는 1905(광무 9년) 4월 3일 당시 대한제국의 내장원경(內藏院卿)이던 이용익 선생의 자수자강적 의지에 따라 이재학 전문과와 함께 설립된 사립보성전문학교 법률과이다. 당시의 사립보정전문 법률과는 개화기에 유일한 사학적 법학교육기관으로선 기능하였고, 법학교육과 그 정립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사립보전 법률과는 1907년 (2월, 4월)에 졸업시험을 통과한 법률학 야학과의 18명, 법률학 서학과의 16명으로 총 34명의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대한민국헌법의 기초를 설계한 법학 고대사립보전 법률과는 그 이전의 법판양성소가 사법사무를 담당할 사법관의 속성교육기관으로서 기능하였던 것과 달리 고등교육기관으로서 학문적 성격을 지닌 법학교육을 담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1919년 이후 전임교수 4~5명과 많은 시간강사로 법률과의 교수진이 구성되어 명실공히 우리나라의 법학교육에 있어서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후 보성전문학교가 종합대학인 고려대학교로 새로이 창립됨으로써 사립보전 법률과 역시 고려대학교 정법대학 법률학과로 개청되었다. 이후 법률학과는 1949년(42회)에 20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지금의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로의 편제는 1955년 4월 단과대학 및 학과의 개편 또는 신설에 따른 것으로서 (당시에는 법과대학 내에 법학과와 행정학과가 있었음.) 11명의 전임교수가 재임하고 있었으며, (행정학과 전임교수 포함.) 1956년 이래 매년 1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여 왔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고대법학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는 세계적으로 능력을 인정받는 51명의 전임 교수진이 1,500여명의 재학생에 대한 법학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진보적인 커리큘렴, 세계 유명 법과 대학과의 긴밀한 교류, 강연 및 세미나 등 고려대학교는 모든 면에서 최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법과 대학에는 유관 연구기관으로 법학연구원을 두고 있으며, 국내 유일의 독일법 자료실을 설치하는 등 외국법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도 지원하고 있다. 법과대학이 주최하는 모의재판은 국내 법과대학 활동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대학가는 물론 매스컴으로부터도 조명을 받고 있다.특히, 정보화 사회를 맞이하여 국내 법과대학 최초로 인터넷에 ‘고대법대 World Wide Server’, ‘BBS’를 개설한 것을 비롯하여 BK21 사업팀 선정(국제법) 및 최첨단 수업환경 등을 통해 다가올 국제화, 세계화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국내 최고의 법학교육의 요람이후 1981년에 현재과 같이 행정학과가 정경대학으로 소속이 변경됨으로써 법과대학은 법학과 1개 학과만으로 구성되게 되었고, 1980년대 초의 학과 중원에 따라 해마다 3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더불어 1984년 5월에는 제1법학관 건물을 갖게 되었으며, 2001년 2월 화상강의실, 모의법정, 국제회의실 등의 첨단시설을 갖춘 제 2법학관(지하1층, 지하5층, 연건평 3,285)이 완공됨으로써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법학교내의 요람이 되었다.

존경 받는 법 지성의 양성고려대학교 법과 대학은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법학인의 요람이다. 이는 단순히 150여명의 국가고시 합격자를 배출하는 최고의 사법고시 합격률 때문이 아니다. 광복 이후 ‘국내법의 기초를 다지고 법을 통한 사회정의 실현’ 정신 아래 수많은 법조인과 국가 지도자를 탄생시킨 것은 물론,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법 지성을 양성한 전통과 실체가 있기 때문이다.